마지막 남은 집창촌, 용주골 폐쇄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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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마지막 남은 집창촌 '용주골' 이 강제 폐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70대 업주의 흉기 난동도 벌어졌다.
성매매 여성들의 생존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은, 성매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의 직업이 많다. 굳이 성매매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나는 매춘녀들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 의한 강제 폐쇄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런식의 강압적인 정부의 행동이 국민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감정적인 이야기는 배제하고, 성문제에 대해서 철학자들은 어떻게 해석
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미셸 푸코의 관점과 현대 성 윤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보수적 정책과 법제도에 대해 더 깊은 철학적, 윤리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용주골 사건은 한국 사회가 성과 관련된 담론을 얼마나 폐쇄적으로 다루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성에 대한 담론이 권력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 이후 성은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닌 사회적 통제와 권력의 대상이 되었다. 성에 대한 담론을 통제하고 금기시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본적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 행사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성의 역사』가 조명하는 현대 사회의 성 담론
그간 우리 사회는 '성'을 터부시하고 회피해왔다. 성에 관한 모든 논의를 '비윤리적'이라는 프레임으로 재단하며, 이를 공론화하는 것 자체를 꺼려왔다. 하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이러한 현상이 바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푸코의 분석은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는 근대 이후 성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나 개인의 자유 영역이 아닌, 권력이 작동하는 핵심 영역이 되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를 분석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첫째, 규범화와 통제의 메커니즘이다. 사회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만들어 성을 통제한다. 의학, 법률, 교육 등의 제도적 장치들이 동원되어 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이는 곧 개인의 성적 자유와 표현을 제한하는 틀로 작용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비정상', '일탈', '타락'과 같은 단어들은 이러한 통제 메커니즘의 산물이다.
둘째, 권력의 미시물리학이 작동한다. 사회는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통해 성을 규율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통제가 외부의 강제가 아닌, 개인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고 통제하게 만드는 내면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회적 시선과 비난이라는 무형의 압박이 개인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다.
셋째, 저항과 해방의 가능성이다. 푸코는 성에 대한 담론 자체가 저항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존의 권력 구조에 도전하고 새로운 담론을 형성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을 단순한 억압의 대상이 아닌,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성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억압은 오히려 더 큰 사회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은폐된 영역은 통제와 관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성은 더 이상 은폐하거나 억압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공론화를 통해 건강한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때다. 푸코의 통찰은 우리에게 성에 대한 담론이 단순한 '윤리'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의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억압과 통제가 아닌, 이해와 소통을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성적 자유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성숙한 사회적 담론을 통해 건강한 성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독일과 네덜란드 같은 유럽 국가들의 경우, 성 관련 정책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열린 접근을 취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성을 악으로 규정하고 억압하기보다, 인간의 본질적 측면으로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사회 제도 안에서 다룰 것인지에 대해 열린 토론을 진행해왔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성을 단순히 도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실존의 영역으로 보았다. 그들은 성과 관련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성에 대한 더 성숙한 담론이 필요하다. 단순히 금기와 처벌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이는 성을 죄악시하거나 방종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남성들은 ,여성의 권리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기본권 신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남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해소, 또는 가부장적 권리 주장이 아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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